일제강점기의 아쉬움...
원래 근대화라고 하는 것은 우연이 겹치고 겹친 끝에 일어난 역사상 아주 기적같으면서도 우연적인 하나의 사건에 불과했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로 말미암은 종교적인 권위의 추락, 오스만투르크의 지중해 통제로 말미암은 동서무역의 제약, 그리고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이슬람세계와 교류하면서 유럽으로 흘러든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유산들에, 선교사며 모험가, 항해자들이 가지고 온 특히 중국의 사상과 철학 등등등... 그러면서 어디선가는 인문학적인 혁명이 일어나고, 어디선가는 자본주의의 혁명이 일어나고, 산업기술의 혁명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비로소 산업혁명에 이르러 유럽세계는 장차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근대화였다.
따라서 유럽을 제외하고서는 - 아니 유럽에서조차도 근대화란 외부로부터의 이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영국이 이루어낸 성과들을 모델로 삼아 부국강병에 박차를 가한 결과가 유럽의 근대화였고, 또한 그 영향을 받은 것이 미국의 근대화였다. 그래서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것도 나온 것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나마 중국이나 일본의 근대화는 이러니저러니 하더라도 그들 자신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면이 있었다. 유럽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는 했지만 일본의 근대화를 주도한 것도 어디까지나 일본의 지식인과 관료들이었고, 열강에 의해 온갖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마침내 공산혁명을 일으키고 중국을 다시 통일한 것은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중국공산당에 의해서였으니까. 비록 아니나 다를까 전근대적인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던 아시아권 나라들 답게 그러한 과정들조차도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
그러나 조선의 경우는 애초부터 그런 가능성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처음에야 조선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아직까지 조선은 독립국이었고, 조선의 지식인들 또한 새로운 서구의 문물들에 관심이 많았으니. 가장 가까이 근대화에 성고한 일본을 모델로 삼고자 일본에 유학하거나 일본에게서 배우려 했던 지식인들도 많았고, 미국으로 유학은 떠난 지식인들도 있었고, 유럽을 모델로 삼아 배우고 연구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 의해 신분제 철폐가 주장되어지기도 하고, 입헌군주제가 주장되어지기도 하고, 부국강병의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었다. 서재필, 박영효, 김옥균, 조만식, 이승만, 이완용 등등등... 아, 이완용 또한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조정에 충성을 다하던 개화파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마 그대로만 계속 이어졌다면 조선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 시간이야 걸리기는 했겠지만 분명 근대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일본에 의해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를 빼앗기게 되었으니, 이후의 조선의 모든 변화는 일본에 의해 주도되게 되어 버렸다. 일본이 바라는 만큼만, 일본이 허락한 만큼만, 일본이 허락할 수 있을 만큼만, 조선의 변화란 일본에 의해, 일본을 위해, 철저히 일본의 입장에서 타율적으로 강요되듯 이루어졌던 것이다. 조선인들은 그것을 그저 받아먹기만 했었고.
이것이 문제였다. 원래 근대성이라고 하면 크게 자율성, 보편성, 객관성을 들 수 있을 텐데, 보편성이나 객관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조선의 이른바 근대화에서는 처음부터 자율성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철저히 일본의 주변부로써, 일본의 입장에서, 일본에 의해, 그저 단순히 주어지는 것을 받아먹기만 하는 타율적인 변화로써 이른바 근대화라는 것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해방 이후 한국사회를 뿌리부터 썩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로 남게 된다. 뭐냐면 바로 타율성이다.
한 마디로 한국인들은 스스로 나서서 하는 것이 없다. 남들이 하는 것만, 남들이 하라는 것만, 남들이 하는 만큼만, 그래서 남들 않는 건 자신도 않는다. 남들이 한다면 자신도 한다. 특히 유명인이 한다고 하면 그것이 뭔 개짓거리라 해도 무작정 따라한다. 거물숭배랄까... 말 그대로 거물숭배다. 선거에 나오면 그 사람의 됨됨이나 정책보다는 그가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방송에도 많이 나오고, 이름도 제법 알려지고, 어디 유명한 대학을 나와,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해서 박사학위 땄다고 하면 그대로 무비판적이 되는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정치인의 후원을 등에 없거나. 누가 지지한다더라, 누구 계파라더라, 어디에 속해 있다더라...
그런 결과가 될 사람 뽑는다, 될 만한 사람 찍는다,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도 이번에는 인물이 나와야, 나아가 "지도자"가 훌륭해야... 이게 어디 개명한 근대화된 국가에서 나올 소리인가? 그러나 어느 해외 언론에서 지적했듯 그러한 대중의 성향에만 맞추면 개도 당선될 수 있는 게 또 대한민국이다. 심지어 죽는 바람에 선거운동 한 번 안 해 본 사람도 당당히 당선되고 그랬었는데. 능동적으로 후보자의 정보를 획득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판단으로 투표하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나타난 결과들이다.
대중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에 훌륭한 뮤지션이 있고, 누가 어떤 음악을 하고... 모른다. 어디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독립영화가 있고... 당연히 모른다. 매스미디어에 자주 노출이 되는, 매스미디어가 열심히 떠들어대는, 그 이상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들처럼 미디어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 인간들도 드물다. 철저히 타율적으로 주어진 정보에만 의지해, 자기 판단도 아닌 것을 자기 판단처럼 여기고 사는 사람들... 결국에 스스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슬픈 군상들인 것이다. 주는 대로나 받아먹고 마는...
그래서 이놈의 나라에서 성공하자면 먼저 이미지부터 좋아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이미지를 살 수 있어야 한다. 더 비싼 돈을 들여 더 많은 미디어를 사들여 그것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어차피 미디어로부터 강요되는 이미지 이상은 알 생각이 없으니까. 그 이상은 어차피 주어봐야 돼지목에 진주요, 개발의 편자에 불과할 테니까. 딱 그 만큼만. 딱 그런 만큼만.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커녕, 한강을 금으로 발라야 비로소 미꾸라지가 금칠을 하고 용 행세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것을 금빛에 홀려 용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식민지근대화론이 말하는 근대화된 대한민국과 한국국민의 실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 한민족의 실상이다.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는 것보다 어렵다... 과찬의 말씀이시다. 쓰레기통에서도 장미는 필 수 있다. 그보다는 청계천에서 은어가 발견되기를 바라는 것이 옳겠다. 청계천에서 은어가 낚이고, 안양천에서는 빙어가 발견되고... 시화호에서 목욕 한 번 했더니만 기미 주근깨 여드름이 깨끗이 사라지더라... 그러면 한국에서도 민주화의 가능성은 있다. 결국에 일본제국주의가 나기고 간 폐해라... 철저히 식민지의 어리석은 백성들 - 일본제국의 철저한 신민으로 삼고자 했던 결과인 것이다. 그것도 근대화라면 근대화인 것이고, 좋다면 좋은 것이고. 아마 그게 딱 수준이라는 거겠지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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