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상반기에 안성의 옛나루터에 대한 조사를 하였다.
안성은 조선시대 전국 3대시장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상공업이 발달하였고 특히 생활필수품이었던 유기제품은 전국에서 제일 품질이 좋았다.
그래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안성이 발달할 수 있었던 지리적 여건으로는 3남의 도로가 안성을 경유하여 한양을 향했던 도로상황과
서해의 바닷길이 "안성강"으로 이어져 내륙수송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안성강은 준설을 하지 않아 점차 수심이 낮아졌고
특히 60년대말부터 아산만 방조제사업이 시행되면서부터는 뱃길이 끊겨 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조선시대 수많은 배가 드나들던 "안성강"은 "안성천"으로 전락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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